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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칼 세이건의 콘택트를 읽다.

먼 곳을 돌아 내안의 우주를 만나다.

- 칼 세이건의 콘택트

 

행복을 찾아 멀리 여행을 가지만 결국 행복은 우리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책을 읽고 문득 벨기에 작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웃 마술 할머니 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한 파랑새(행복)를 찾아 떠난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꿈의 세계를 여행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머리맡의 새장속 새가 파랑새임을 발견하고 할머니에게 갖다 준다. 딸은 병이 낫고 파랑새는 멀리 날아간다. 콘택트는 우주의 외계생명체와의 조우를 통해 지구의 소중함을 내 안의 우주를, 진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어머니가 선택한 새 아버지와의 관계는 삐걱대고 가정에서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엘리는 무한히 넓은 우주공간에 빠져 지낸다. 물리학자가 되어 아르고스라는 민간 연구소에서 엘리는 마침내 외계생명체의 전파를 탐지하게 된다. 전 세계는 그들의 의도에 반신반의하며 외계생명체들을 만날 준비를 진행한다. 외계로부터의 신호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선의와 악의, 종말론, 신의 계시, 전쟁의 시작 등 그야말로 다양한 편견들에 의해 해석이 달라진다.

 

우여곡절 끝에 엘리를 포함 다섯명의 세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선택된다. 외계에서 보내준 설계도에 의해 건설된 운송장치를 통하여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 온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찰라의 순간에 불과했고 24시간 가량을 경험한 엘리와 동행인들은 녹화한 영상이 없는 비디오테입때문에 그들의 경험을 증명할 수 없다. 언제 누가 건설한 지 알 수 없는 우주터널을 통해 외계인들을 만난 엘리는 당혹스럽다. 외계와의 조우 프로젝트는 거대한 예산이 투자되었던 하나의 헤프닝으로 비밀에 부쳐진다.

 

이야기는 종교와 과학의 두 흐름으로 이끌어진다. 나 같은 평범한 이들에게 과학과 종교는 서로 도저히 만나질 것 같지 않은 직선의 양 끝에 위치해 있다. 종교란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실체와 증명보다는 믿음에 기초한 계시가 있고 과학은 가설을 세워놓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모형을 만들고 수학적 논리를 통해 과학적 사실로서 입증된다. 엘리는 증명되지 않는 신의 사랑에 부정적이다. 엘리와 토론을 벌이는 신학자 파머 존스는 편견을 버리고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과학자들이 영감이나 계시 같은 종교에서 다루는 것들을 애초부터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비판한다.

 

종교와 과학이라는 씨줄, 날줄의 엮임속에서 사랑은 이 책을 꿰뚫고 있는 커다란 주제이다. 일찍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커질수록 새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어머니의 옛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에 엘리는 모든 것을 거는 진실한 사랑을 겁낸다. 그러나 대통령 과학자문 데어 헤르와의 사랑은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발견이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앞에서 평소 나도 알지 못했던 자아의 등장에 내가 이런면이 있었나?’하고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랑에 대한 엘리의 관찰은 또 다른 사랑에 대한 해석으로 인상적이다.

 

엘리는 연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안에 숨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란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한 살짜리, 다섯 살짜리, 열두 살짜리, 그리고 스무 살짜리 자아의 모습을 사랑하는 상대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면 한 인간은 총체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사랑은 그 많은 자아들의 긴 외로움이 끝나는 곳이다. 사랑의 깊이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수의 자아가 깨어나는가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었다.” 209

 

은하계 중앙역에서 엘리는 겸허함을 배웠다. 지구의 생명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300

평생 우주를 연구했지만 그 안의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놓쳐버린 셈이었다. 우리와 같은 자그마한 생명체는 오로지 사랑을 통해서만 광대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 말이다.” 303

우주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그 원은 말하고 있었다. 어떤 은하에 살고 있든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누어 충분히 계산하고 나면 소수점 몇 킬로미터 아래쪽에서 또다른 원을 발견하는 기적을 만나는 것이다. 더 계속하면 더 풍부한 메시지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건 이미 여기 있었다. 모든 것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걸 발견하기 위해 자기가 사는 행성을 떠날 필요는 없다.” 304

 

여행에서 돌아온 엘리는 어머니의 유언장을 보고 새 아버지가 친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결국 우주여행을 통해 가까운 곳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아득히 먼 우주와의 끊임없는 접촉을 시도했던 엘리지만 자기 주변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던 그녀는 먼 곳을 돌아 여기 자기를 사랑했던 이들의 희생을 깨닫는다. 마치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여행을 마친후 머리맡의 파랑새를 발견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