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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한강의 '소년이 온다'

그때 그 사람 들

- 소년이 온다. 한강

 

정신과 신체. 이 둘을 분리할 수 없지만 정신의 고통과 신체의 고통 어느 편이 더 힘들까? 물론 상호적이다. 정신적 상처는 몸의 스트레스로 반응하여 질병을 일으키고 신체의 질환은 불안, 우울증 등 마음의 질병을 유발한다.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만성질환과 그 합병증 포도막염을 10여차례 겪으며 병원치료와 별도로 개인적으로 웃음의 치료학을 받아들여 코미디 프로그램을 열심히 찾아 본다. 정신의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실제로 웃음으로 인한 염증수치(ESR, CRP)가 내려가는 과학적 자료도 있으니.

 

지극히 개인사가 아닌 사회적 상처라면 어떻게 치료가 가능할까? 그것도 국가의 폭력에 희생되었다면. 인간이라는 자긍심을 짓밟아 버리는 굴욕적인 물리적 폭력으로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면. 이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치유될 수 없다.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암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온 몸과 영혼 전체로 그 상처가 전이되어 갈 뿐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5,18 민주화 운동에서 사라져 갔으나 떠나지 못하는, 살아남았으나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들은 여전히 19805월에 남아있다.

 

책을 읽기 전 다짐을 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갖고 침착하게 읽자. 감정을 쏟지 말자. 작년 한때 서 있기도 힘들만큼 몸상태의 악화를 경험한 후에는 마음의 고통을 일으키는 모든 것은 피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매년 5월이면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한 얘기들이 흘러 나오기에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제대로 모르는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를 드려다 보는 것을 좀 꺼려했다. 다행스럽게도 맨부커상 취지(수상작이 좀 더 많이 팔리게 할 목적)에 부합하여 이 책까지 읽는 독서 소비자가 되었다.

 

하루에 한 장씩 마지막 장을 읽을때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느라 잠시 쉬어가며 읽어야 했다.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이야기여서였을까. 여느 평범한 청년들이 스러져 가는 이야기들에서는 오히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던 것이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감정이 복받친다. 국가가 국민을, 보통의 평범한 시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진 않을 것이라고 쓰러지는 동료, 친구를 보면서도 끝까지 국가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그들. 독재장기집권의 파멸 후 민주주의의 희망을 바라고 원했을 뿐인 그들은 대단한 투사, 무정부주의자들이 아닌 바로 우리 동생, 친구, 이웃들이었다.

 

동호, 정대, 정미, 진수, 선주, 은숙 피기전에 져버린 아름다운 청춘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한강은 그들의 아픈 상처를, 기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들을 유심히 관찰하지만 흥분하지 않고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되 깊다.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진실, 고백 대충 봉합하려는 역사적 상처는 더욱 곪고 지난한 불필요한 논쟁속에 본질은 사라져간다. 무엇인가에 쫒겨 담을 넘으면 또 다른 담에 막혀있고 가까스로 넘으면 망에 걸리고 자다 숨이 막혀 일어나기를 36년간 매일 경험하고 있다.’ 5.18때 고1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상담치료를 하며 하신 말씀이다. 2012년 광주 정신건강 트라우마 센터가 늦게나마 생겼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그분들의 치유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