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진화 -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을 읽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국으로 우리는 인공지능에 호기심과 두려움을 갖게 되면서 동시에 인간의 특질, 미래의 우리의 위치 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근대인의 탄생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결국 ‘역사의 상당 부분은 뇌가 점차적으로 유전자를 누르고 우위를 점해 가는 과정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라는 칼 세이건의 말이 그 시기에 이미 깨우쳐진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뇌의 진화를 칼 세이건은 폴 매클린이 정의한 삼위일체의 뇌로부터 설명한다. 즉 공격적 행동, 영토 본능, 위계적 의식등 파충류의 성질을 보여주는 R복합체, 강렬하고 생생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영역인 포유류에서 특징을 발현하는 변연계, 그리고 영장류에서 보여지는 인지적 기능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뇌 부위인 신피질이다.
신피질의 진화를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짓는 기준으로 칼 세이건은 바라보고 있으며 성서로부터 이야기를 끌어온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뱀의 유혹에 선악과를 먹고 신의 노여움을 사서 쫓겨났다. 뱀은 네발을 가진 파충류(용)에서 진화했고 배로 기어다니게 되는 신의 징벌을 받았지만 인간에게 추상능력을 갖게 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한 셈이다.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인식(신피질:선악을 구별하는 데 필요한 추상능력과 윤리적 판단)을 취함으로써 인간은 오늘날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커진 뇌의 크기 때문에 출산의 고통은 시작되었다.
뇌의 진화에 대해 서술하면서 성서이야기부터 신화, 철학, 과학을 버무린 칼 세이건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상상력은 이 책에서 또 다시 진가를 드러낸다. 성서, 신화, 철학 어찌 보면 지루하고 고루한 허황된 얘기로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을 과학적 이론을 근거로 풀어가는 데서 감탄과 즐거움을 느꼈다. 플라톤의 대화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가 인간의 영혼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로 묘사한 것에 R복합체와 변연계를 두 마리의 말로 신피질을 말을 통제하는 마부로 비유한 것. 폴 매클린의 삼위일체의 뇌를 프로이트의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연결시킨 것은 무척 흥미롭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수면과 꿈. 낮에는 웅크리고 있던 R복합체(파충류의 뇌)가 밤에 기지개를 펴면서 공격적인 꿈을 꾸게 되고 나무위에 살던 시기의 두려움이 우리 몸에 지금도 간직되어 우리는 그렇게도 떨어지는 꿈을 꾼다는 설명은 재미있다. 고전적인 뇌 분류로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누어 좌뇌형, 우뇌형 인간으로 구분짓기도 하지만 중복적인 기능과 균형을 맞추려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칼 세이건의 설명이다.
중간 중간 뇌의 기능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을때면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는 듯한 지점들이 있다. 간질발작을 일으키는 환자의 해마주변 영역을 절제한 후 병세는 좋아졌지만 기억상실에 걸렸다는 부분에서는 병은 뇌의 기억으로 그 증상이 발현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거친말과 욕설을 주체못하는 투렛증후군 환자는 의사앞에서는 자제하지만 의사가 사라지면 그 격렬한 말들이 다시 활개친다. 그렇다면 자제와 억제가 본인의 의지가 담긴 신피질의 기능일까, 환자의 위치에서 상위에 있는 의사라는 권위에 대한 복종의 의미로 R복합체의 활약일까?
신피질의 진화가 인간을 특징지울 수 있다면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는 추상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칼 세인건은 그렇다고 말한다.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를 대상으로 수화와 여키시라는 컴퓨터 언어를 가르쳐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실험한 결과 놀라울 정도로 문장을 완성시키는 능력, 문법의 오류 수정 등에서 뛰어났다. 저자는 대규모 영장류 연구소를 방문했을 당시 양쪽에 침팬지의 우리가 늘어서있는 끝없이 이어진 복도에서 연구소장과 칼 세이건이 다가갈 때마다 비명과 쿵쿵 두드리는 소리, 창살을 흔들어 대는 소리로 넘쳐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는 비인간적인 주립교도소나 연방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폭군 같은 교도관이 다가오자 죄수들이 식기를 가지고 창살을 두드려대는 장면을 연상 한다.
“만약 침팬지에게 의식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만약 침팬지들이 추상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들도 오늘날 인간에게 부여된 ’인권‘과 같은 것을 갖게 될까? 침팬지가 얼마나 영리해야 침팬지를 죽이는 행위에 살해죄가 성립하게 될까? 침팬지가 어떤 특징을 더 보이면 선교사들이 그들을 개종시켜야 할 대상으로 고려하게 될까?”(150쪽)
“침팬지는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다. 이들은 분명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대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 모든 문명 세계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유인원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일까?”(151쪽)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막연히 두려움을 갖는다. 인간만이 생각하고 추상하는 능력이 있다는 자부심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우리(모든 생명체들)는 유전자의 생존기계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냐며 항변했다. 칼 세이건은 다가오는 미래에는 지적인 인간과 지적인 기계와의 협력이 필요한 시대라고 예언한다. 뇌(신피질)의 진화로 우리는 지금의 문명을 건설했다. 그 과정에서 지구의 환경에 문제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해결책도 우리의 지식에 달려있다고 칼 세이건은 말한다. 다음의 칼 세이건의 말에서 좀 더 겸손한 주체로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의식이나 지적 능력이 ‘단지’ 물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충분히 복잡하게 배열되어 생겨난 결과라는 사실이 조금도 인격을 떨어뜨리는 사실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른 물질과 자연법칙의 미묘함과 신비에 대한 고무적인 찬양으로 여겨진다.”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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