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내 두 개의 서재, 두 개의 꿈꾸는 공간.
『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 서윤영
여전히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왔지만, 시내 한복판에서 살다 지병의 악화로 일과 살림살이 거처를 조금은 한가한 곳, 자연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왔다. 움직임이 더뎌질수록 집 안에 스스로 감금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자연히 집안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방 세 개, 거실 하나, 부엌 하나, 화장실 두 개의 평범한 30평대의 공간 어느 하나 죽은 공간을 두고 싶지 않았다.
24평에서 30편대로 이사오며 방 세 개를 옷방, 침실, 서재로 이용하려 했지만 붙박이 장과 기존 장으로 굳이 옷방이 필요치 않았다. 남편과 같이 쓰던 서재방에 불편한 맘이 들었다. 책장의 책들 거의 대부분은 내 것들이었지만 서재방의 쓰임새는 남편이 우선순위였다. 현관쪽 가까운 방을 마침내 내 서재로 결정했다. 등산이며 사업상 골프 등 상대적으로 바깥활동이 많은 남편의 옷들과 용품들로 채워지던 방이다.
같이 서재 쓰지. 뭐 두 개가 필요해? 요즘처럼 미세먼지도 많은 때 외부활동후 외투나 가방 등 현관쪽 방에 두고 오면 위생적이고 좋지 않나? 남편의 그럴듯한 얘기에도 나는 나만의 꿈꾸는 방이 필요했다. 경제적 여유가 되어도 내 물건 하나 사는 것에, 책상을 하나 더 들인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작가를 발견했다. 나의 생각에 논리적 근거를 대 줄 책을 찾았다. 기쁜 맘에 단숨에 읽었다.
『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 작가는 건축 컬럼니스트이다. 저자 역시 신혼초부터 남편과 함께 쓰던 서재에서 독립된 각자의 서재가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아파트 평수를 넓혀왔고 남편 손님이 아닌 내 손님을 독립적으로 응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응접실이 필요해서 결국 40평대 아파트로 이사왔단다. 40대의 아이없는 부부, 건축을 공부한 작가 학부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하고 나도 남편과 오롯이 둘뿐인 40대의 중년이니 공통점이 보여 더 책에 끌렸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엄마의 지인들이 놀러와 부엌 한 켠 식탁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일찍 귀가하시는 아버지의 등장에 총총히 자리를 뜨던 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손님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ㄷ자형 한옥에 살며 사랑을 두 개 두고 싶었던 작가. 그러나 아내의 사랑은 결국 주방옆에 있을 수밖에 없나 하는 의구심등 공감가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100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책 한권씩을 출간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작가는 30세 되던 해까지 학부와 석사과정을 두 번 거쳤단다. 공부를 성인이 되고 나서도 10여년이상 한 셈이다. 건축사무소에 근무했지만, 3년 안 되는 기간동안 설계에서 자료실로 결국 구조조정으로 그만두고 책을 읽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단다. 중간 중간 저자의 독서편력, 복식문화에 건축이상으로 관심을 보인 얘기 등 이 재미있다.
아무래도 저자의 개인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약간의 괴리감이 들 때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이상을 공부만 할 수 있었던 작가의 경제적 환경이 내심 부러웠다. 어려서 책에 둘러싸여 살았던 환경. 그런데 저자는 자기 어렸을 적 웬만한 집에는 가정부가 있었으며 학생 등 식구가 더 있으면 그 수가 늘어나기도 해서 초등생 시절 책 읽어주는 선생을 아버지가 구해 주었다 한다. 운이 좋아 사립학교에 다니게 되어 교내 좋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 방에서 복닥거리며 방 한 켠 TV옆 커텐을 치고 공부방이라 여기던 초등생 시절. 고등학교 졸업전부터 10여년 녹록치 않은 직장생활 후 대학을 들어간 내 경험때문이었을까 작가의 경제적 여유를 아주 평범한 환경으로 묘사를 해 놓은 부분에서는 약간 이질감도 느껴졌다.
독서는 시공간을 초월 위대한 스승으로부터의 가르침, 작가와의 대화라고 하는데, 나에게 이 책이 작가와 얘기하듯 중간 중간 내 생각과 반론을 적어가며 읽는 책이었다. 작가의 박식함에 통찰력에 감탄하며 나와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 생각하며 읽는 독서를 하던 차에 가볍게 나름의 공통점에 이입되어서일까 그냥 이웃집 동년배와 대화하듯 재미있게 읽어내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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