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생활에서

지하철 안에서

  오랜만에 설레는 맘을 안고 서촌 길담으로 공부하러 간다.  정점의 출근 시간이 지난 때지만 지하철 안은 제법 붐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탓에 두터운 외투와 모자를 챙겼지만 지하철 안은 36.5도의 온기들로 따뜻하다 못해 덥다.  가방에 외투와 모자까지 어찌할지를 헤매는데. 옆에 한 청년이 눈짓과 손짓으로 선반을 가리키며 틈을 내어준다.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가무잡잡한 피부. 작은키지만 다부진 체격 바로 앞 좌석의 여성과 동행인듯 싶다.  베트남? 태국? 동남아인듯 싶지만 모르겠다.  그에게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짐들을 올린다.  잠시 후 갑자기 덜컹 지하철이 급정거를 하는 듯 흔들린다.  나는 넘어지려 비틀거리고 그때 단단한 손의 힘이 내 팔에 전해진다.  옆에 있던 그가 넘어지려는 나를 잡아주었다.    지하철 안에서는 어찌 보면 흔한 일이다.  가끔 덜컹거리고 그렇다고 넘어지지는 않는다.   완전히 널부러지지 않는 한 그런 친절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난 감사한 맘이 들었지만 좀 당황스러웠다.  때문에 이번엔 고마움의 표시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빈 자리가 났다.  선반에서 짐을 내리려는데 그 청년이 또 솔선해서 도와주려 한다.  짐을 내리는 내 손이 좀 더 빨랐기에 도움을 주려는 그 손들은 허공을 휘익 한번 젓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연이은 친절에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뭔가 약간은 찜찜한 채로 앉아 있다가 그 청년과 일행여성은 지하철에서 내렸다.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을 뉴스를 통해서 들었다.  풍등을 올린 스리랑카 근로자를 중대한 과실혐의로 구속했단다.  제대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나는 저유소가 가까이 있음을 인지하고도 불장난을 행한 생각없는? 동남아 사람의 잘못으로 화재가 났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근처 초등학교에서 행사로 수십개의 풍등이 날려졌고 그는 우연히 발견해서 호기심에 날려본 것이라는 것.  저유소라는 위험시설이 동네 주유소보다도 위험관리가 안되어 있었다는 것.  사고가 난 후에도 시설관리자들은 인지를 못했다는 것.  총체적인 근본 원인은 따로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흥분하면서도 내 스스로가 그들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낮에 지하철 안에서 있었던 일과 저녁 뉴스를 들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  (0) 2019.11.11
삶의 축약. 오늘 하루  (0) 2019.11.11
일단 멈춘 책방 일지  (0) 2018.10.11
질투는 나의 힘이 되고자 하지만..  (0) 2018.09.25
별거 없는 삶이지만 오늘도 산뜻하게..  (0) 201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