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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러셀의 수필 <무용한 지식>을 원서로 읽으며 느끼게 되는 생각들..

 

수콩반에서 버트란트 러셀의 ‘USELESS’ KNOWLEDEG를 읽으며,

- 나의 유.무용의 독서를 돌아보다.

 

 

 

  독서행위에 즐거움을 느끼는 나에게 주위 친구들은 부러움의 시선을 보낸다가장 많은 반응은 나도 여유가 있다면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좋겠다그런 여유가 있어서."  나도 이런 여유에 감사하다.   역설적이게도 책은 내가 만성질환을 얻고 나서부터자가면역질환을 두가지 정도 겪으며 다가왔다치료에 도움될까 내 몸을 위한 실용적 독서도 있었지만 광범위하게 나의 독서편력은 넓어졌다.   합병증으로 눈이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책읽는 행위는 가장 소중했다덕분에 치료를 더디게 만들었다전혀 나의 상황에 맞지 않을 것 같은 고전속에서 뭔가 모를 위로를 받고 나를넘어 인간 전체, 지구상의 모든 종, 우주를 바라보는나를 발견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동시에 우주내 푸른 창백한 점하나에 이렇게 생명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과 전율을 느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멜라닌 색소가 파괴되어 탈색해 가는 피부에 움츠려들었던 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것이 오히  려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관념적으로만 보이던 불교의 원리가 프리쵸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읽으며 만물의 상호연관성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왔다.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최대한 우리는 효율적으로 일과 공부여가도 즐겨야 한다.   어느 정도 물질적 성과가 이루어지자 성장은 더디어지고 과거의 번영이 더 이상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이때 다시 한번 효율을 생각하며 무용한 것은 모두 치우고 유용한 것만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노동할 것인가. 오직 미래을 위해서이러한 프레임은 여전히 유효하지만덜 쓰고 덜 노동하며 여가를 즐기자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

 

  노동을 줄이고 여가를 즐기는 흐름과 독서행위러셀의 수필을 읽으며  그 상관관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다양한 독서행위는 필수적이고 자랑스러운 행동이다그러나 밥벌이를 해야 하는 성인들에게는 학문과 관련된 직업외는 자랑스러울수도 있지만 팔자 좋다는 뉘앙스의 부러움의 시선들이 있다종종 내가 왜 읽지무슨 목적으로무엇을 위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가하며 스스로 밥벌이에 유용한 책을 읽어야 하지 않나? 자문할 때가 있다

 

  러셀은 현대의 발달된 시스템하에서 이제 장시간의 끊임없는 노동은 바뀌고 여가 시간을 필수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그 여유속에서 소위 현실에 유용하지 않은 지식의 추구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역설한다살구에 대한 기원과 작명에 대한 역사를 알고 난 후 더욱 더 과일의 달콤함을 즐기게 되었다는 러셀. 무심코 먹는 과일 한입에서 응축된 역사를 삼키는 경험을 즐기는 것이다. 화난 사람앞에서 데카르트의 <열정에 관한 논문>의 한 장을 생각해내며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는 등 실질적 도움을 찾을 수도 있다.

 

What is needed is not this or that specific piece of information, but such knowledge as inspires a conception of the ends of human life as a whole: art and history, acquaintance with the lives of heroic individuals, and some understanding of the strangely accidental and ephemeral position of man in the cosmos.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또는 저 특정한 지식의 조각이 아니다. 전체적인 관점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의 개념에 영감을 주는 그러한 지식이다. 즉 예술, 역사, 영웅적인 사람들 생과의 친밀함, 그리고 우주안에서의 기이하고도 우연적이며 하루살이같은 작은 존재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이해이다.)

 

  • 소로우도 <월든>에서 현실의 유용성만을 위한 독서가 아닌 인생의 고양을 위한 독서을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장부를 기입하고 장사에서 속지 않기 위해서 셈을 배운 것처럼 하찮은 목적을 위해서 읽기를 배운다. 고귀한 지적 운동으로서의 독서에 대해서 그들은 거의 또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독서인 것이다. ...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

 


지금의 문명을 이루고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할 수 있었던 무기 그것은 바로 상상력이었다고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말하고 있다. 상상력은 신화를 만들어내고 신화는 구전으로 이어지다 글로써 그 기록을 남겼다. 러셀은 문화적으로 가장 융성한 시기였던 르네상스의 주요 동기를 예술과 사색에 깃든 풍요와 자유의 회복에서 오는 정신적 기쁨이었다.”라고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배우는 것이 술을 마시거나 사랑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삶의 기쁨(joie de vivre)’의 하나였다.”고 말한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사람들이 종종 우리 인간이 겨우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라는 사실에 경악하고 이의를 제기한다. 도킨스는 우리 인간만이 갖는 독특한 성질을 밈이라는 문화적 유전자로 설명했다. 이미 인공지능의 시대로 접한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상당부분을 컴퓨터가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작년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대결로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별되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뜨거워졌다. 과거에 유용했던 지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단편적 지식은 손끝의 터치만으로 얻을 수 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노동을 줄이고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는 예술, 문학, 역사, 과학 등의 총체적인 놀이로써의 지식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