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을 맞이하여 집 근처 삼겹살 집으로 가족 모두 모였다. 여름이지만 아직 6월의 저녁은 청계산과 주위의 녹음덕분에 상쾌한 편이었다. 고기굽기는 막내 남동생과 신랑의 차지였다. 남동생은 마치 장어집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것처럼 장어굽듯 능숙하게 삼겹, 오겹살을 구워냈다. 신랑 역시 열심히 고기굽느라 장인어른 장모를 웃음짓게 하는라 손과 입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부모님은 당신네 생신때 혹시라도 자식들이 부담을 갖지 않을까 염려하신다. 우리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아버지는 우리가 기억할 때부터 술을 좋아하셨다. 술을 드실때마다 생의 한탄, 울분, 분노 등이 표출 되곤 하셨다. 물론 고스란히 그 피해는 엄마에게 대부분 갔지만, 우리 삼형제도 그 시절에 대한 상처들을 안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나이 50이 다 되어도 80넘은 아버지가 술 취한 듯한 음성으로 전화 하실때면 그렇게 싫을 수 가 없다.
그제도 아버지는 약주 한잔 하시고 남동생에게 전화를 하셨나 보다. 화기 애애한 분위기속에서 평소엔 과묵하시다 술만 드시면 대화를 시도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남동생이
이의를 제기했다. 봇물 터지듯 아버지, 남동생은 이야기를 이어갔고 엄마의 그간의 아들의 살갑지 못한 태도에 대한 서운함 등이 얽혀 돌아갔다. 우스개 소리 한 마디에 까르르 한바탕 웃고 우리집으로 와 생일케익에 맥주 한잔 그렇게 생일파티는 막을 내렸다.
같은 시기를 살더라도 각자의 입장, 환경에 따라 그 기억은 다 다르다. 남동생이 아들로서의 책임감, 의무감으로 힘들었던 때가 하나의 상처로 자리잡았다면 나와 여동생 또한 둘째로서의 중간에 끼인 위치에서의 어려움, 첫째로서 경제적 책임감으로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름의 괴로웠던 시간들이 있다. 가족으로 오랜 세월을 같이 했지만, 정작 서로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문득 느껴졌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서로를 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잘 알지 못했던 것처럼 가족이란 왠지 모를 끈끈한 애정의 집합체속에 묻혀 있지만 서로 마음 속 연결고리는 얼마나 탄탄할지 생각하게 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때로는 넋두리를 하고 싶다. (0) | 2017.02.06 |
---|---|
삶을 누려야 할 이유 (0) | 2016.06.21 |
만성질환을 앓고서 겁쟁이가 되었다. (0) | 2016.04.25 |
봄의 햇살 가득한 어느날에 문득.. (0) | 2016.04.09 |
이제 글을 쓰자!!! (0) | 2016.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