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를 벗어난 즐거움
나는 경기도 의왕에 산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으로 일주일에 두번 일어공부모임과 영어공부모임에 참여한다. 버스 또는 지하철을 세번정도 갈아타고 가는데 왕복 거의 네시간이 걸린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 아니라면 이렇게 규칙적으로 달려갈 이유가 없다.
지난 일본어 공부시간에는 좀 특별한 공부를 했다. 다른 때보다 참여율이 저조한 가운데 시작은 추석연휴 안부를 묻는 일상의 수다로 시작 되었다. 서원지기 소년님이 함께 하면서 이야기는 휴먼라이브러리에서 사람책을 대출하여 읽듯 삶의 한 단면을 읽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환경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보기. 가족, 몇십년을 같이 했어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말로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상대에게 전할 수 있을까. 등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일본어 진도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복습할 기회가 한번 더 주어진 셈이다. 모임이 끝나고 나오는 길 하늘이 더욱 파래보였다. 쏭맘님과 잠시 산책하자고 합의가 되었다. 대로에서 길담으로 오던 길에만 익숙하게 다니다가 늘 저 언덕너머로는 어떤 길이 있을까 궁굼하던 방향으로 걸었다. 옥인동을 넘어 남산까지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서울의 연신 감탄하며 집들과 사잇길을 기웃거렸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환승센터에서 지하철을 타야했는데 안마시술소 침술행위에 대한 합헌요구 시위로 1711번 버스 경로가 바뀌었다. 15분이면 갈 거리를 독립문으로 서대문으로 빙 돌아 30여분 걸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문득 내가 운전기사라면 이러한 평상시의 정도로부터 벗어난 경로가 내심 반가울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시간에 맞춰 운행해야 하는 기사님들의 고초는 잠시 잊어버리고.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내려올 때 보았네 라는 고은 시인의 시구처럼 같은 길도 방향에 따라 다른 것을.
덕분에 거대한 건물들 사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앙증맞은 버거집. 터널위 용도가 무엇일까 궁굼증을 자아내는 백색의 집들. 호기심가득 차창밖의 풍경들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 덧 서울역. 이렇게 늦은(?) 퇴근 행렬이 시작되는 즈음에 지하철을 타고 간 적은 없다. 늘 인파로 북적이지만 조금은 더 고달플 귀가시간이 되겠지만, 여행에 잘못든 길을 없다했던가 오늘은 좀 다른 월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