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에디톨로지>를 읽으며
어제 더 없이 청명한 하늘에 이끌려 동편마을로.. cafe에서 커피 마시며 비치되어 있던 김정운의 <에디톨로지>를 읽었다. 물론 한시간 남짓에 훌훌 넘기며 관심가는 부분만 읽었다. 저자는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없이 목차의 존재이유를 파악하여 선택해서 주체적으로 읽을 것을 강조하니 저자의 의도대로 그의 책을 잘~ 읽은 것이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편집이 곧 창조이다' 이렇게 책의 주장을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정신분석학의 대가로 그 이름쯤은 누구나 아는.. <바이올렛아워>라는 죽음의 시간에 임박한 예술가의 삶을 다루고 있는 책에서 프로이트의 소원한 부부관계, 딸에 대한 집착 등을 엿볼수 있었는데, 그의 여성편력과(늘 흥미로운 소재겠지만) 명예욕을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는 그의 이론이 지금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 다른이의 이론을 자기것인양 한 경우도 있으나 그의 편집능력만큼은 위대하다고 주장한다. 피카소, 카라얀 등 자신의 능력만큼이나 연출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예술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연출과 편집은 같다고 할 수 없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창조란 완전히 다른 그 무언가일거라는 환상은 왓슨의 증기기관, 에디슨의 발명품이 그 이전의 제품을 업그레이드 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이미 깨졌다. 나와 같은 평범한 이에게는 안도감을 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쩌면 편집이나 연출이 더욱 천재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촉수를 단단히 세워 기존의 것을 해체, 보완, 수정, 결합 시키는 시각. 결국 끊임없는 관찰력이 핵심이 아닐까. 원시 시대 하루, 한달, 일년의 개념이 없던 시절.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먹을 것을 위해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을 방황해야 했던 시절. 하루를 24시간으로, 365일을 일년으로 쪼개어 반복하는 시간, 계절로, 나침반으로 내가 있는 곳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의 위치까지 파악하여 시간과 공간의 불안감을 걷어내었다. 반복속의 변화 과거 여러번의 가을을 지나 또 그러나 다른 가을이다. 시간, 공간 그 미세한 변화의 떨림을 만끽하고픈 10월이다.